서울 도심 한복판의 남산 자락에 자리한 남산예술센터는 상업성과는 거리를 둔 진정한 ‘공공극장’으로서의 역할을 꾸준히 추구해 온 공연예술 공간이었습니다. 2009년 서울문화재단이 개관한 이래 상업적인 흥행보다는 사회적 메시지와 예술적 실험정신이 살아 있는 작품들을 선보이며 독자적인 정체성을 구축해 왔죠. ‘흥행’보다는 ‘의미’에 집중하는 이 공간은 공연예술계 안에서도 매우 특별한 위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남산예술센터만의 특징
남산예술센터는 특히 ‘창작자 중심의 공연 생태계’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주목받습니다. 연출가, 극작가, 배우, 무대디자이너 등 창작진이 각자의 예술적 자율성과 실험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창작 중심의 구조는 일반적인 상업 공연장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입니다. 서울문화재단의 지원 아래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공연들이 무대에 오르며, 젠더, 노동, 환경, 역사, 인권 등 우리 사회가 마주한 복합적인 주제를 연극이라는 매체를 통해 풀어왔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남산예술센터의 공연은 관객을 단순한 ‘소비자’로 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공연을 통해 질문을 던지고, 관객은 그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아가며 참여자 또는 비평가로서의 위치에 놓이게 되죠. 예술과 사회, 예술과 관객 사이의 관계를 다시 묻는 이 공간은 그래서 더 특별한 역할을 담당해 온 것이죠.
공연장의 구성과 특징
남산예술센터의 공연장은 약 300석 규모의 중형 블랙박스형 극장입니다. 블랙박스형 구조의 장점은 무대의 형태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인데요, 연출 의도에 따라 무대와 객석의 배치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어 매 공연마다 완전히 새로운 공간 연출이 가능합니다. 이 덕분에 관객은 더욱 몰입감 있는 공연 경험을 하게 되고, 무대와 관객 사이의 거리감도 한층 좁혀지죠.
공연장 내부는 어둡고 절제된 분위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배우의 움직임과 대사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설계입니다. 무대미술이 심플하면서도 강렬한 경우가 많고, 무대장치나 조명 또한 공연의 메시지를 극대화하는 도구로서 유기적으로 활용됩니다.
프로그램과 기획의 힘
남산예술센터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시즌제 공연 기획’이었습니다. 매년 하나의 주제를 선정하고 그에 맞는 작품들을 큐레이션하여 공연 라인업을 구성하는 방식인데요. 이를 통해 단순히 개별 작품을 넘어 한 시즌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서사처럼 구성하는 예술적 시도도 이어져 왔습니다. 기존 작품의 재해석이나 동시대 이슈를 반영한 신작 초연들이 주로 무대에 오르며 예술성과 사회성의 조화와 공존을 추구한 것입니다.
대표적인 공연작으로는 사회적 갈등과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그을린 사랑》, 이방인의 시선으로 우리 사회를 조망한 《이방인》, 유쾌하면서도 날카로운 풍자를 담은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등이 있으며 이외에도 무수한 실험극, 젠더 퍼포먼스, 지역 사회 연계 프로젝트 등 다양한 시도가 있어 왔습니다.
위치와 공간 그리고 휴관 소식
남산예술센터는 충무로역(3호선, 4호선)과 을지로4가역(2호선, 5호선) 사이에 위치해 도보로 접근이 용이합니다. 번화한 도심 속에서도 남산의 녹지와 어우러져 있어 극장에 가는 길 자체가 하나의 작은 산책 코스가 되는 점도 매력적이죠. 도심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잠시 멈추고 사유하는 공간이 되어 줍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는데요, 2023년부터 남산예술센터는 잠정 휴관에 들어갔습니다. 시설 개보수와 운영 방식 재정비 등의 이유로 공연은 잠시 중단되었지만 서울문화재단은 남산예술센터의 철학과 정신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공공예술 플랫폼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단순한 공연장이 아닌 공공성과 창의성을 담보한 예술 실험의 공간이었던 남산예술센터가 다시금 문을 열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려 봅니다.